현재까지 수많은 좀비 영화가 제작되어 왔고, 그 중에서는 ‘새벽의 저주’와 같은 명작들이 탄생되어 왔다.
나 역시 수많은 좀비영화의 팬으로서 다양한 영화를 시청해왔지만, 그중에서도 애착이 가는 영화 몇편이 있다.
새벽의 저주, REC 1편, 플래닛테러, 28일 후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오늘은 ‘나는 전설이다(2007)’에 대해 되짚어 보고자 한다.
사실 ‘나는 전설이다’를 좀비영화로 구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렇다와 아니다의 여러 의견이 있다.
좀비란 죽은 사람의 시체가 다시 되살아난 것을 말하는데, 나는 전설이다의 좀비는 바이러스에 의해 변형된 살아있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좀비영화는 인격과 감정이 존재 하지 않는, 오로지 본능에 의해 인간을 사냥하는 좀비들과의 사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대다수의 좀비영화들은 이러한 기본적 배경에 충실히 의존해왔다.
단지 살기 위해 좀비를 죽이느냐, 혹은 좀비에게 죽임을 당하느냐로 구분지어져 제작되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이 ‘생존을 위한 사투’라는 기본적인 배경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제작된 영화가 있었는데, 그 영화가 바로 ‘나는 전설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바이러스에 의해 좀비로 변해버린 인간들과, 세상에 혼자 남겨진 주인공 ‘네빌-윌스미스’의 사투를 기본적인 배경으로 삼고 있으나,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사투가 아닌 인간의 본질에 대한 것일 것이다.
2012년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가 멸망하고, 유일하게 내성이 있던 과학자 네빌만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생존하게 된다.
재앙이 발생한지 1001일 째가 지나도록 네빌을 제외한 생존자는 발견할 수 없었고, 그에게는 ‘샘’이라는 애완견 한마리 뿐이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네빌은 생존자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고, 어딘가에서 있을지모르는 생존자를 찾기 위해 식량과 생존을 책임질 것을 약속하는 라디오 방송을 멈추지 않고 송출한다.
멈춰버린 시간속에서, 그가 들을 수 있는 인간의 목소리는 이제는 모두 외워버린 티비와 영화속 대사들 뿐이다.
그는 뉴욕의 마지막 생존자였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변해버린 좀비를 다시 인간으로 치료하기 위해, 그들 중 하나를 생포한 네빌은 이를 계기로 좀비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이는 그의 사랑하는 애완견 ‘샘’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좀비로 변해가는 샘에게 자신이 개발한 백신이 효과가 없음을 알게 된 네빌은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샘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다.
네빌은 더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고, 마지막을 의미하 듯 좀비들에게 자신을 내던진다.
영화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던 순간, 네빌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또 다른 생존자가 나타나 네빌을 구출하게 되었고, 또 다른 희망이자 불행이 시작된다.
그토록 바라던 백신이 치료적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나, 구출 도중 자신의 은신처가 발각된 네빌과 생존자들.
좀비들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무너져 가는 은신처 속에서 네빌은 과연 어떤 마지막 선택을 하였을까?
좀비영화의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그 속은 드라마의 내면을 가지고 있다.
단지 좀비로부터의 생존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본질과 치유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촬영를 탄생시키기 위해 무수히 많은 특수효과가 사용되었지만 이 영화에 대해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네빌, 그리고 인간의 내면세계이다.
세상속에서 나혼자만이라는 극단적인 공포감과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의 아픔과 치유, 그리고 새로운 희망과 탄생을 담아내고 있다.
윌 스미스는 ‘나는 전설이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 껍질을 하나 둘씩 벗겨나가다 보면 그 내용물은 뭔지 모호해진다. 그에 대한 판단은 각자 내리는 것이다. 내가 영화를 찍으면서 느꼈던 카타르시스를 관객들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전설이다’는 흥미진진한 액션이면서도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