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수많은 명작 영화 중에서 돋보이는 작품을 선택하자면, 여지 없이 택할 수 있는 작품이 있다.
바로 ‘그랜토리노(2009)’이다. 지난번에는 그의 다른 영화인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대해 글을 올린적이 있는데, 밀리언달러베이비와 함께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랜토리노’가 무엇인지에 궁금해하는 영화팬들이 많을 텐데, 그랜토리노는 1970년대 포드에서 생산한 자동차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랜토리노 역시 실제로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를 어렵게 구해 촬영했다고 한다. 이 자동차는 영화속에서 클래식한 멋을 선사하는 외형뿐 아니라 평생에 다시 느껴보지 못할 거대한 울림을 선사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영화를 찍으면서 차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스트우드가 이 차를 다음 영화에도 등장시킬지 모른다고 하니 이 자동차가 영화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자동차 정비공에서 은퇴한 주인공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일상은 매일 마당의 잔디를 깎고, 맥주를 마시고 낡은 집을 수리하는 것이 전부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때의 기억과 상처에 괴로워하는 월트와, 그가 지난 과거에서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랬던 월트의 아내는 ‘자코비치 신부’에게 그가 참회할 수 있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유언을 지켜주고 싶었던 자코비치 신부는 매일 같이 월트를 찾아가지만, 월트에게 그는 그저 27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던 존재는 그의 애완견 뿐이다.
주변에 존재했던 이웃들은 모두 이사를 가거나 죽었고, 그의 주변엔 몽족 이민자들 뿐이었다. 월트의 눈에는 시끄럽고 정돈되지 않은 삶을 사는 몽족들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그런 몽족을 제외한 라틴계 혹은 흑인들은, 그들만의 갱단을 구성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그저 사회악인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소년 ‘타오’가 갱단의 협박으로 월트의 72년산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 한다.
월트는 그런 타오를 막아 자신의 차를 훔치지 못하게 하면서, 갱단의 싸움을 무마시켰고 이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타오 가족의 영웅이 된다.
잘못을 보상해야 한다는 몽족의 규칙에 따라 타오는 그의 집안 일을 돕기 시작했지만, 타오는 월트에게 있어서 그저 어린 사고 뭉치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월트는 타오에게서 자신의 소년시절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결국 친구이자 남자로서 인정하면서 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가르친다.
또한 타오 가족의 계속되는 친절 속에서 월트는 그들을 이해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몽족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느 영화속 주인공처럼 월트에게도 시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타오의 누나이자 타오만큼 월트를 따랐던 수가 타오를 괴롭히던 갱단으로 부터 범죄의 표적이 되어 피해를 입게 된다.
분노한 타오와 그가 자신과 같은 죄책감과 과오를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았던 월트.
타오를 자신의 창고에 가둔 후 타오를 대신해 홀로 갱단에 맞서려 한다.
“난 이미 손에 피를 묻혔으니까, 난 이미 더렵혀졌으니까. 그래서 혼자 가야한다.”
어두운 밤, 홀로 갱들앞에 선 월트. 그는 어떤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됐을까?
이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마지막 출연작이다.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연출에만 집중할 것을 선언했다.
마지막 연기라는 것을 알리듯, 그는 특유의 무덤덤하지만, 내면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외신은 ‘더티 해리’의 부활이라며 노장의 귀환에 극찬을 보냈고, 전미 비평가협회 선정 최고의 영화 선정과 남우주연상, 각본상을 수여했다.
작품성을 증명하듯 해외에서는 제작비의 4배 이상을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한다. 미국에서 6개라는 초라한 상영관 개봉을 시작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여 결국 2808개로 상영관을 넓히는 저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다소 아쉬운 134,650명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였다.
그랜토리노에서 스토리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바로 음악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촬영 동안 멜로디를 생각한 후 영화에서 중요한 곡을 직접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 재즈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인 제이미 칼럼과 돈 러너가 연주하고 부른 ‘그랜 토리노’의 주제곡 역시 이스트우드가 참여했다. 그의 아들이자 오랜 파트너이기도 한 카일 이스트우드와 제이미 칼럼, 마이클 스티븐스의 합작품으로 골든글로브 주제곡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랜토리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의, 인간의 관계와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대단한 영웅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을 토대로, 그가 살아가면서 겪는 인간관계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하며 진정성을 담아내려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들려오는 음악에 다시 한번 가슴이 시큼해지는, 엔딩크레딧의 마지막 한줄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그런 영화이다.